화이트칼라의 범죄자들

Swindling Billions

   
카리 나스(역자: 김정혜)
ǻ
한빛비즈
   
16000
2011�� 11��



■ 책 소개
화이트칼라의 범죄자들은 어떻게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는가? 
2500년 전 돈의 탄생과 함께 금융범죄의역사도 시작되었다!
 

핀란드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유럽은행위원회 위원장 등 50여 년의 세월을 금융계에 몸담아온 금융전문가의 책. 북유럽 최대 규모의 금융범죄인윈캐피타 피라미드 사기가 벌어진 후 핀란드에서 출간되어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영국, 독일, 중국, 루마니아에서도번역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의 각방면에서 관리적·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가 직무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직무과정에서 범하는 범죄행위를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한다. 화이트칼라의범죄자들은 일정한 권한이나 지위를 남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고, 계획적이고 교묘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범죄행각은기업 또는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쳐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하고, 국가의 정치·행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등 해악성이 매우 크다.오늘날에는 화이트칼라의 범죄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나날이 증대되고 있어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금융 전문가의 입장에서 돈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금융범죄의 역사를 분석한다.150년형을 구형받은 버나드 메이도프, 피라미드 사기의 창조자 찰스 폰지, 정부기관을 사칭해 에펠탑을 판 빅토르 루스티히, 회계 부정 및기업범죄의 대명사인 엔론사태 등 세계경제를 뒤흔든 10대 금융범죄를 통해 화이트칼라의 범죄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피해자들은 왜 그들에게 속아 넘어갔는지, 예방책은 없는 것인지 살펴본다.

■ 저자 카리 나스(Kari Nars)
50여 년의 세월을 금융계에 몸담아온 핀란드에서가장 존경받는 경제전문가이자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금융인이다. 핀란드 재무장관, 핀란드은행 총재, 헬싱키은행의 전무를 지냈다. 또 워싱턴,런던, 파리, 헬싱키 등지의 국제적인 금융기관에서 고위직 임원을 역임했고, 유럽은행위원회 위원장, 여러 글로벌 대기업의 이사회 임원으로활동했다. 『화이트칼라의 범죄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찾아온 『Swindling Billions』는 핀란드에서 처음 출간된 후영국, 독일, 중국, 루마니아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역자 김정혜
한양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커뮤니티칼리지에서 SLP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눈먼 자들의 경제』『설득의 힘』 『체인지리더십』『생각이 차이를 만든다』『위대한 성과의 법칙』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 - 돈을 좇는 사람들, 돈에 쫓기는사람들

1. 금융사기꾼들의 세상속으로
01 이번엔 다르다는 말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
02 돈을 숭배하는 사회
03 탐욕의 세상은 어떻게돌아가는가?
04 수백억대의 사기를 가능케 하는 금융사기꾼들의 꼼수
05 희대의 사기꾼들이 탄생하기까지
06 세상을 뒤흔든10대 금융범죄

2. 금융범죄의 역사속으로
07 자본과 권력을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다 - [존 블런트]
08 포이에스 정착 프로젝트로 부동산 사기를벌이다 - [그레고어 맥그리거]
09 정부기관을 사칭해 에펠탑을 팔다 - [빅토르 루스티히]
10 피라미드 사기를 창조하다 - [찰스폰지]
11 스웨덴 최고의 기업가에서 범죄자로 전락하다 - [이바르 크뤼예르]
12 미국 뮤추얼펀드의 역사를 새로 쓰다 - [버나드콘펠드]
13 적대적 인수합병과 도주의 귀재 기업을 사냥하다 - [로버트 베스코]
14 미국 역사상 최대의 파산 규모를 기록한엔론사태를 일으키다 - [케네스 레이]
15 윈캐피타로 북유럽 최대의 피라미드 사기를 벌이다 - [한누 카일라야르비]
16 전 세계를상대로 헤지펀드 사기를 저지르다 - [버나드 메이도프]

3. 2500년간의 시간여행을 마치며
17 꿈같은 일이라면 꿈인것이다




화이트칼라의 범죄자들


금융사기꾼들의 세상 속으로

2500년 전 돈이 발명된 이래, 사기꾼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챙겼다. 오죽하면 수천 년 전의 로마시대에 사는 사람이 조심하라,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속담이 있었을까.


흥미로운 점은 사기수법이 지난 1세기 동안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기꾼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발하고 다양한 속임수를 고안해 냈지만 근본적인 범행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1900년대 초, 찰스 폰지가 피라미드 사기를 고안한 이후로 형태와 방식은 다를지언정 남을 쉽게 믿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다양한 피라미드 사기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18세기에 살았던 존 템플턴의 현명한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영어에서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네 개의 단어는 This time is its different!,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선의에서든 악의에서든 파괴적인 사기극에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들에게 불신과 미움의 씨앗을 뿌리면서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금융범죄자들이 수십억 달러의 부당이득금을 해외에 있는 조세피난처에 은닉하는 경우에는 관련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출 수도 있다. 정부가 세수 감소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직한 시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흔든 10대 금융범죄



인간의 금전욕은 돈이 탄생한 이래로 지난 2500년의 세월 동안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금융시장의 기본적인 게임 규칙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 투기꾼들은 투기를 하고, 사기꾼들은 사기를 치며,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신중하게 투자를 한다.


찰스 킨들버거는 그의 저서 『광기, 공포, 붕괴(Manias, Panics and Crashes)』를 통해 투기 열풍과 이를 이용한 금융범죄들은 갑작스러운 경제 호황과 과열된 산업 분야를 기반으로 태동한다고 이야기했다. 16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와 영국과 미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가 그러했다. 또 1929∼1930년에는 미국 주식시장에 광풍이 불어닥친 후 뒤이어 경제위기가 찾아 왔었다. 1990년대에는 IT 붐이 거세게 일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붕괴되며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7∼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일어난 폭발적인 경제 성장도 마찬가지였다.


광기의 역사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할 때 발생한다. 먼저 은행과 기업, 투자자들에게 신호가 나타나고, 뒤이어 주가가 경이로운 수준으로 폭등하면서 기존 투자자는 물론 신규 투자자들까지 주식시장으로 몰려든다. 이때 행복감에 도취된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의 투자자들은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막대한 투기 이익을 약속하는 사기꾼들에게 이들은 손쉬운 사냥감이고 시장은 사냥터이다. 사기꾼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람들의 탐욕을 이용하기 위해 광기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이 모든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18세기 애덤 스미스의 경고처럼 인간의 어리석음, 나태함, 사악함, 무절제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초기 광기의 행렬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투자 대상을 매각하고 현금화하면서 서서히 발을 빼기 시작한다. 경제의 거품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은행이나 대기업의 파산 혹은 고평가된 주식의 폭락 같은 신호들이 나타난다. 그 이후로는 카드로 지은 집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독일인들은 이런 현상에 출입구 폐쇄 공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문이 닫히기 전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리 지어 빠져나가기 위해 문 앞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문을 빠져나가는 사람은 매우 적은 수다.


상업과 금융의 위기는 법, 규제, 도덕성의 경계를 벗어나는 수많은 거래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때로는 이런 경계가 가끔 모호해지기도 한다. 경기과열기가 계속될 때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금융범죄를 향한 이끌림과 투기를 향한 욕구를 가지고 같은 목표를 향해나가는 협력자가 된다. 그러나 경제침체기에 공포와 붕괴는 "꼴찌가 악마의 먹이가 될 테니 재주껏 도망쳐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을 속이도록 부추긴다.



금융범죄의 역사 속으로

자본과 권력을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다 - 존 블런트

1711년 당시 재무장관을 지냈고 훗날 옥스퍼드 백작 1세가 된 로버트 할리는 영국 런던에 사우스시(South Sea)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다. 사우스시의 주요 임무는 막대한 정부 부채를 민영화하는, 즉 민간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일부 거상들은 사우스시의 설립 취지대로 정부부채를 얼마씩 떠안았고 그 대가로 보유한 국채를 사우스시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사우스시 주가 조작 사건의 주동자인 존 블런트는 사우스시의 초대 이사인 동시에 정부 부채 민영화 계획의 배후였다. 존 블런트는 사람들이 사우스시가 하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울수록 사우스시에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의 목표는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회사가 아닌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사우스시는 순풍에 돛 단 듯 성장하면서 1717년에 1000만 파운드였던 자본금이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200만 파운드로 증가했다.


사우스시가 정부의 특별한 지원과 각별한 보호 아래 승승장구한 이후 온갖 종류의 새로운 거품 회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설립됐다. 이들 회사의 목표는 단 하나, 대국민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이었다. 목적을 이룬 사기꾼들은 착복한 돈을 챙겨 연기처럼 사라졌다.


1720년 6월 초가 되자 사우스시의 주가 상승세는 주당 900파운드 가까이 치솟으며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순간 일부 투자자들은 더 큰 탐욕과 광기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고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했다.



* 아이작 뉴턴과 조지 1세의 치명적인 실수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자 영국 왕립조폐국의 국장이었던 아이작 뉴턴 역시 사우스시의 주식에 투자했다. 그는 초기에 매입했던 사우스시 주식을 7000파운드에 매도해 큰 수익을 올렸으나 조금 더 이익을 얻어볼 심산으로 다시 상당한 금액을 재투자했다. 문제는 이때는 이미 사우스시의 주가가 정점을 찍은 후였다는 점이다. 결국 주가 폭락으로 그는 2만 파운드를 잃고 말았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300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액수다. 욕심을 부려 큰 손해를 본 후 주식시장에 환멸을 느낀 아이작 뉴턴은 그 이후로 누군가가 주식시장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천체의 운동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1720년 늦여름, 수많은 대주주들이 주식을 처분하면서 사우스시의 주가가 폭락했다. 9월 중순, 신용대출을 통해 거품 회사의 주식을 매입했던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식을 매각함에 따라 사우스시의 주가는 400파운드까지 폭락했다. 사우스시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용한 모든 지원책을 이미 다 동원한 터라 더 이상 사용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주가를 다시 끌어올릴 만한 마땅한 호재도 없었다. 초가을이 되자 모든 힘을 다 써버리고 기진맥진해진 사우스시는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그저 맥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주가 폭락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수백 명의 투자자들이 자살을 했다. 그리고 수천 명이 파산해 그들 중 상당수는 그야말로 알거지가 됐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비극을 겪는 것을 지켜보며 위기감을 느낀 조지 1세와 수행원들은 하노버에서 급히 귀국해 의회를 소집했다.


존 블런트가 저지른 많은 위법행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밝혀졌다. 존 블런트는 정관계 종사자들에게 지위와 영향력에 따라 적게는 1만 파운드에서 많게는 25만 파운드(현 시가로 약 3500만 파운드)의 막대한 뇌물을 건넸다. 이렇게 정성어린 선물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우스시의 주가를 올리는 데 힘을 보태야 하는 강력한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우스시의 주주 대부분은 무모했다. 그 이유는 첫째,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사우스시의 주가가 심각하게 고평가됐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히 있었다. 둘째, 사우스시의 주가가 급등한 이후에 주식을 매입한 사람들이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주가 상승이 극히 제한적이며 위험도 크다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사우스시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은 1720년 내내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주가 상승을 이끌 만한 호재도 없었다.


정부기관을 사칭해 에펠탑을 팔다 - 빅토르 루스티히

자칭 루스티히 백작이었던 빅토르 루스티히는 역사상 가장 철면피의 사기꾼이었다. 그의 범죄 경력은 화려하고도 길다. 카드 게임의 명수로 이름을 알린 후에도 그는 화폐 인쇄기로 사기를 쳤고 파리의 한 고철상에게 에펠탑을 팔기도 했으며 심지어 악명 높은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속여 돈을 갈취하기도 했다.


그는 1925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경마 사기를 성공적으로 저지른 후 파리로 갔다. 당시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이 남긴 전쟁의 상처를 서서히 회복해가던 상태였다. 기지개를 펴던 프랑스 경제는 온갖 종류의 사기를 벌일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제공했다.


어느 날 아침, 노천카페에 앉아서 지역 신문을 읽고 있던 빅토르 루스티히의 눈에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1889년 파리국제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의 유지관리 비용이 매년 증가하는 바람에 정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마다 도색작업을 하는 데만 수백만 프랑이 들고, 철골 구조와 내부를 대대적으로 수리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어차피 에펠탑은 철거를 전제로 세운 임시 건축물이었으니 이제라도 해체를 해 고철로 팔자고까지 이야기했다.


빅토르 루스티히는 그 기사를 읽고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위조한 공문서 양식을 손에 얻게 된 그는 우정전신국의 이름으로 공문을 작성해 파리의 유명 고철상 6명에게 발송했다. 공문에는 프랑스 정부의 중요한 사업과 관련해 비공개 긴급 회의가 있으니 참석을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회의 장소는 예나 지금이나 파리에서 가장 유서 깊은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인 콩코드광장에 위치한 크리옹호텔이었다.


6명의 고철상 모두 통보받은 시간에 맞춰 크리옹호텔에 도착했다. 빅토르 루스티히는 자신을 우정전신국의 사무차장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에펠탑의 유지관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 이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골칫거리인 에펠탑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 빅토르 루스티히는 행여 의심이라도 살까 봐 참석자들에게 에펠탑 매각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일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회의를 마친 다음 그는 참석자들을 검은색 리무진에 태우고 에펠탑의 현장 조사에 나섰다. 리무진까지 빌려 현장조사를 나갔던 이유는 6명의 고철상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속이기 쉬운 목표물을 가려내기 위함이었다. 참석자들이 돌아갈 즈음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목표물을 낙점했다. 희생자는 바로 앙드레 푸아송이라는 고철상이었다.


한편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앙드레 푸아송의 아내는 의심이 들었다. 고위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든 것이 왜 그토록 비밀스러운 건지, 거래를 이렇게나 서둘러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그녀가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앙드레 푸아송은 빅토르 루스티히로부터 자신이 에펠탑 해체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교활하기가 뱀 같았던 빅토르 루스티히가 앙드레 푸아송의 의심과 불안감을 모를 리 없었다.


빅토르 루스티히는 양자회의에서 자신이 고위 공무원이기는 하지만 월급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부수입이 필요하다고 쑥스러운 듯이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는 자신의 일에 최대한의 재량권이 주어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앙드레 푸아송은 빅토르 루스티히의 의중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뇌물을 바라는 부패한 공무원일 뿐이었다. 그러자 모든 의심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앙드레 푸아송은 빅토르 루스티히처럼 부패한 공무원들을 신물이 나도록 상대해오면서 그들을 요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빅토르 루스티히는 앙드레 푸아송으로부터 에펠탑의 인수 대금과 사무차관을 위한 뇌물이 포함된 거액의 현금이 들어있는 서류 가방을 건네받았다. 그는 우정전신국의 대리인 자격으로 앙드레 푸아송에게 우정전신국의 인장이 찍혀 있는 공식 영수증까지 발급해주었다.


앙드레 푸아송과 헤어진 후 빅토르 루스티히와 로버트 투르비옹은 묵직한 돈 가방을 들고 곧장 역으로 가서 비엔나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후는 빅토르 루스티히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파리에서 그가 우려할 만한 소식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앙드레 푸아송은 너무 창피해서 감히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빅토르 루스티히는 얼마 후 파리로 다시 돌아와 앙드레 푸아송에게 써먹었던 것과 똑같은 수법으로 에펠탑 사기를 또 한 차례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두 번째 에펠탑 매각 사기의 목표물은 다행히도 거래가 종결되기 전에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경찰에 신고를 해 화를 면했다. 빅토르 루스티히와 그의 개인 비서였던 로버트 투르비옹도 운좋게 경찰을 피해 도망쳤다.


사기꾼 경력을 시작한 이후로 44번째 감옥행. 재판의 최종 결과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 1935년 12월, 시카고 법원은 빅토르 루스티히에게 총 1억 3400만 달러(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했을 때 20억 달러가 넘는다)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위조지폐를 발행하고 유통시킨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죄질이 나쁜 화려한 전과로 인해 그는 샌프란시스코 만에 위치한 최고 보안등급의 악명 높은 앨커트래즈 감옥에 수감됐다. 빅토르 루스티히는 그곳에서 11년간 죗값을 치르던 중 폐렴에 걸려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연방의료교도소로 이감돼 치료를 받다가 1947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7세였다.


피라미드 사기를 창조하다 - 찰스 폰지

가장 널리 알려진 대규모 금융범죄수법 중 하나는 피라미드 사기, 다른 말로 폰지 사기다. 폰지 사기란 말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이민자인 찰스 폰지(Charles Ponzi)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획기적인 사기수법은 금융범죄의 역사에 찰스 폰지라는 이름을 영원히 새겨놓았다.


보스턴에서 찰스 폰지는 기업들에게 광고 지면을 판매해 이를 소책자로 만들어 배포하는 작은 광고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이 사업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찰스 폰지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찾아왔다. 스페인 기업들에게 자신의 광고 회사를 홍보하는 판촉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한 회사로부터 회사 소개자료를 보내달라는 요청과 우편 회신 쿠폰을 받은 것이다. 찰스 폰지는 그 쿠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몇 가지 허점을 발견했다. 이 허점만 잘 공략하면 큰 돈벌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다 세밀한 범죄 계획을 짰다.


우편 회신 쿠폰은 해외에서 우편을 보내는 사람이 회신 우편에 대한 우편요금을 쿠폰으로 미리 치르는 것이었다. 쿠폰은 국가별 우편요금 체계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됐다. 수취인은 발신인으로부터 받은 쿠폰을 회신에 필요한 자국의 우표로 바꿀 수 있었다. 찰스 폰지는 만일 두 국가의 우편요금에 차이가 있다면 쿠폰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는 살인적으로 물가가 상승했다. 이로써 미국 달러에 대한 이탈리아 리라의 환율이 크게 떨어졌고, 이탈리아의 우편요금 또한 미국 달러로 환산했을 때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찰스 폰지는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잠재 투자자들에게 우편 회신 쿠폰 사업의 방법과 수익성에 대해 설명했다. "달러를 이탈리아의 대리인에게 송금하면 그 대리인이 통화가치가 높아진 달러를 통화가치가 하락한 이탈리아 리라로 환전하고, 그 돈으로 이탈리아의 값싼 국제 우편회신 쿠폰 수백만 장을 구입합니다. 그런 다음 미국에서 그 쿠폰을 받아 가격이 높은 미국 우표로 바꾸고 마지막으로 이 우표를 달러로 교환해 시세차익을 얻습니다."


찰스 폰지의 이 같은 아이디어는 환차익 거래처럼 두 시장의 가격 차이에서 이익을 얻는 일종의 중개업이었다. 다시 말해 해외에서 값싼 자산을 매입한 다음 자국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되파는 사업인 것이다. 이는 100% 합법적인 비즈니스였다. 그의 사업 계획은 얼핏 보기에는 순박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큼 단순했지만 금융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먹힐 만큼 충분히 복잡했다.


찰스 폰지의 계획은 논리적인 동시에 매력적이었다. 그는 45일 안에 50%의 이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지인들을 자신의 사업에 투자하도록 설득했다. 찰스 폰지는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미소와 반짝이는 구두 말고도 또 다른 것을 보여주었다. 빨리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환상을 말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투자에 대한 소문이 동부 해안을 따라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누구 하나 그 사업의 현실적인 수익성에 대해 조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유한 이들도 있었지만 투자자들 대부분은 검소한 연금 생활자들이었고 심지어 최저생계비로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우편 회신 쿠폰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며 전 재산을 투자했다.


가장 기초적인 금융 정보만으로도 찰스 폰지의 회사가 적자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찰스 폰지의 회사는 기존 투자자 1명에게 지급할 이익금은 신규 투자자 2명의 주머니에서 융통하고, 이들 투자자 2명에게 지급할 이익금은 신규 투자자 4명이 충당하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문제는 신규 투자자들의 돈이 회사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는 것이다. 찰스 폰지의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설명한 것과 달리 아무런 수익 사업도 벌이지 않았다. 그토록 수익성이 좋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던 우편 회신 쿠폰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렇게 거품 붕괴를 향한 시한폭탄의 시계는 째깍째깍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찰스 폰지는 보스턴 시민들에게 미국의 금융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사기극을 선보였다. 1만7000명의 사람들이 찰스 폰지에게 속아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정부가 임명한 감사관들이 찰스 폰지의 계좌들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들의 주요 목적은 찰스 폰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부정 축재했고, 그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회계전문가들의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찰스 폰지의 증권거래회사의 금융거래 기록들을 취합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는 무려 11년이나 걸렸다. 그리하여 1931년 마침내 최종 파산 보고서가 접수됐다. 조사를 통해 알려진 확실한 내용은 찰스 폰지의 개인 재산이 단 한 푼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1934년까지 죗값을 치르느라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미국의 교도소에서 보낸 찰스 폰지는 1934년 2월, 자유의 몸이 돼 교도소를 나왔다. 찰스 폰지는 십여 년 만에 거의 무일푼으로 조국으로 돌아왔다. 


전 세계를 상대로 헤지펀드 사기를 저지르다 - 버나드 메이도프

미국에서 위대한 투자 귀재로 이름을 날리던 버나드 메이도프가 150년의 징역형을 받고 21세기형 범죄자라는 부끄러운 멍에를 뒤집어쓸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2008년 말, 버나드 메이도프가 자신이 저지른 세계신기록 감의 사기행각을 자백했을 때 세상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무엇보다 버나드 메이도프의 범행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주식시장의 투자 붐이 한창일 때 포트폴리오 투자에 대한 전통적인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가져왔다.


버나드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찰스 폰지나 한누 카일라야르비의 전통적인 피라미드 사기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1. 오랫동안 쌓아온 명성 : 버나드 메이도프가 그토록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십수년 넘게 월가에서는 유능한 증권 거래중개인으로서, 나스닥에서는 전직 의장으로서 대단한 명성을 쌓아왔기 때문이었다. 부자와 투자자들 모두 그를 혁신적인 투자 귀재로 받들고 존경했다.


2. 현실적인 수익률 제시 : 버나드 메이도프는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연 10~15%의 수익률을 약속했다. 주식시장이 호황이든 불황이든 상관없이 시계처럼 정확하게 말이다. 그런 진중한 태도가 안정적인 수익률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덕분에 버나드 메이도프는 투자 경험이 많은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호감을 샀고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3. 신중한 투자접근법 : 버나드 메이도프는 부유한 사람이든 자선단체든 신중하게 구애를 했다.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달려드는 다른 증권회사들과는 달리 투자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작업을 걸지도 않았고, 잘 보이려는 마음에 자신의 능력에 부치는 터무니없는 수익률을 약속하는 법도 절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투자자들을 신중하게 택했다. 또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이 제공하는 상당한 수수료에 맛을 들인 일부 펀드는 제 발로 그의 회사의 자펀드가 되어 버나드 메이도프의 투자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었다.


4. 배타적인 반서민 전략 :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은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이런 배타적인 고객 선별 전략은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의 매력을 높여주었다. 코 묻은 돈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거만한 인상을 주면서 서민 투자자들을 거부한 그의 전략은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다. 많은 부유한 투자자들이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의 고객이 되기 위해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5. 비공개 전략 :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은 투자전략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투자전략이 정교하고 일관적이며 외부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이야기했다.


6. 소정의 수수료 정책 : 버나드 메이도프는 부자들의 특성을 잘 알았다. 돈이 많아도 때때로 인색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업계의 통상적인 관행과는 달리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수료와 수당을 부과하지 않고 소정의 거래수수료만 청구했다. "유대인은 할인받는 것을 좋아한다."던 평소 그의 말처럼 부자들은 버나드 메이도프의 수수료 정책에 홀딱 넘어갔다. 고객들은 그가 증권 거래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것으로 짐작했을 뿐, 어디서 수익을 올리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7. 결정적 실수가 없었다 : 대부분의 사기꾼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사기행각이 끝이 나거나 범죄가 들통나기 전에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에 반해 그는 장장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헤지펀드를 이용한 폰지 사기로 감쪽같이 속였다.


8. 절대적인 신뢰성 : 버나드 메이도프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이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먹혀들었다. 다른 헤지펀드에 투자할 때와는 달리 버나드메이도프증권에 투자하려는 고객들은 버나드메이도프증권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말하지 않겠다는 혹은 그에게 투자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비밀유지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버나드메이도프증권에 투자했던 한 유대인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대인의 대표적인 특성 세 가지는 재정적 신중함, 보수주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성향이다. 버나드 메이도프는 위험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위험청정지역이라고 할까. 그는 유대인의 보수성에 충실했고, 하루아침에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허황된 약속 따위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믿고 투자를 결심했다."


9. 탁월한 로비 활동 : 버나드 메이도프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상당한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그는 워싱턴 정가에서 거액의 정치자금 기부자로 이름을 날렸고 주식시장의 구조조정을 위한 공격적인 로비스트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세계의 영화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속아 막대한 투자금을 날렸다. 그의 동료인 제프리 카젠버그 버나드메이도프증권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 차이스패밀리재단, 로버트래핀자선재단, 피코워재단, JEFT재단 등의 수많은 자선단체들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을 안전한 투자처로 생각해 투자를 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메디치은행, HSBC, 시티은행, 나티스, 포티스, ABN암로, 아르헨티나은행, 메릴린치, 페어필드그린위치그룹, 애스콧파트너스 등은 수십, 수백억 달러 규모의 막대한 피해를 입거나 파산했다.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피해를 입은 유대인들은 수천 명에 달했다. 버나드 메이도프의 사건을 담당하게 된 파산관재인 어빙 피카드는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명단을 1993년 개봉한 전쟁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빗대어 스윈들러 리스트(Swindlers List)라고 불렀다. <쉰들러 리스트>는 스윈들러 리스트에 버나드 메이도프의 피해자로 이름을 올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이다.



2500년간의 시간여행을 마치며

꿈같은 일이라면 꿈인 것이다

한번쯤 의심해봐야 할 금융범죄의 10가지 체크 항목

1. 고수익이 어떻게 창출되는지 확인하라. 투자 메커니즘을 확인하라.

2. 그들이 제안하는 투자 메커니즘이 고수익을 보장한다면 왜 다른 자산관리업체들과 은행들이 그 투자기법을 사용하지 않는지 알아보라.

3. 투자와 수익에 적용되는 세법을 확인하라.

4. 회사의 소유주와 그들의 배경에 대해 확인하라. 교육 수준, 경력, 신용등급은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범죄 기록까지도 확인하라.

5. 명망 있는 전문가 또는 믿을 수 있는 전문기관의 추천서를 확인하라.

6. 지난 몇 년간의 회계 서류들을 꼼꼼히 검토하라.

7. 회사의 감사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가장 최근에 작성된 감사보고서를 점검하라. 간혹 감사보고서가 위조되는 경우가 있으니 담당 회계법인에 직접 연락해서 확인을 받도록 하라.

8. 투자 위험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분석하라.

9. 주거래 은행을 확인하라.

10. 독립적인 제3의 수탁회사가 투자자산을 관리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라. 버나드메이도프증권의 경우처럼 투자자산을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회사는 절대적으로 멀리하라.


※ 특별경고: 판매대리인이 시일이 촉박하다며 결정을 빨리 하라고 조르면서 지나치게 적극적이라면 반드시 조심하라! 사기꾼들은 신원조회를 당하고 뒤를 밟힐 것이 두렵기 때문에 늘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금융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투자의 기본원칙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경계, 또 경계하는 것만이 상책이다. 다시 한 번 말하련다.


"너무 좋아 진짜 같지 않다면 실제로도 진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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