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콘서트
같은 항공권도 가격이 천차만별인 까닭
알다가도 모를 항공요금의 속사정
대한항공은 인천공항과 미국 워싱턴 DC, 엄밀히 말하면 워싱턴 DC 지역의 주항공인 덜러스 공항 간의 직항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 DC에 기착하는 전체 항공사를 통틀어 한국과 워싱턴 DC간의 유일한 직항 노선을 운행한다(2009년 12월 기준). 이곳 워싱턴 DC에 살고 있는 나도 직항의 편리함에다 한국인 승무원의 한국어, 한국 음식 서비스 등으로 인해 한국을 오갈 때면 이 직항 노선을 자주 이용하곤 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 노선을 이용한 적 있다. 당시는 10월 초로 휴가철도 지났고 유학생이나 교민들의 친지 방문으로 붐비는 기간도 아니어서 빈 좌석이 많을 거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에 탑승하니 거의 만석이었다. 게다가 종착지가 인천 공항이고 한국 국적기인 터라 승객 대부분이 한국인일 것이라는 내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승객의 거의 절반이 중국인들이나 동남아인들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대부분 인천 공항을 거쳐 다시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로 향하는 승객들이었다. 이들은 워싱턴 DC에서 이 항공편을 이용해 인천에 도착한 후 다른 비행기로 환승해 최종 목적지로 가려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비행기를 두 번 타는 셈이다. 그러면 비행기를 한 번만 타는 승객과 비행기를 두 번 타는 승객 중 어느 쪽이 더 비쌀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천 공항에서 환승하는 승객들은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하므로 요금을 더 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 비행기를 두 번 타는 게 한 번 타는 것보다 싸다?
<표 1-1> 워싱턴 DC-인천, 워싱턴 DC-마닐라 노선 왕복 항공요금
왕복 노선 | 스케줄 | 항공요금 |
워싱턴 DC-인천 | 워싱턴 DC-인천(대한항공 KE094편 2009년 10월 12일 출발) 인천-워싱턴 DC(대한항공 KE093편 2009년 10월 26일 출발) | $1435.18 |
워싱턴 DC-마닐라 | 워싱턴 DC-인천(대한항공 KE094편 2009년 10월 12일 출발) 인천-마닐라(대한항공 KE623편 2009년 10월 13일 출발) 마닐라-인천(대한항공 KE624편 2009년 10월 26일 출발) 인천-워싱턴 DC(대한항공 KE093편 2009년 10월 26일 출발) | $1378.30 |
*2009년 5월 10일 대한항공 사이트(www.koreanair.com)에서 검색한 이코노미 좌석 운임 비교. 워싱턴 DC-인천 왕복 노선과 워싱턴 DC-인천 구간 왕복은 같은 비행기 KE094와 KE093을 이용하는 데 비행기를 두 번 타는 워싱턴DC-마닐라 왕복 노선이 더 비쌌다.
워싱턴 DC에서 마닐라로 가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워싱턴 DC에서 마닐라 간에는 직항편이 없다. 따라서 다른 지역을 경유해야만 한다(2009년 11월 기준). 이때 대한한공을 이용해 ‘워싱턴 DC-인천’ 직항 노석 비행기로 인천에서 내렸다가 다시 ‘인천-마닐라’ 직항 노선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다. 이때의 왕복 요금은 1,378달러이다(<표 1-1 참조>). 그런데 ‘워싱턴 DC-인천’ 직항편만 이용하면 훨씬 더 비싼 1,435달러를 내야 한다! 같은 날, 같은 비행기의 같은 일단 등급 좌석으로 워싱턴 DC를 출발해 인천에 왔는데 인천이 종착지인 승객은 1,435달러를 내고, 인천에서 마닐라까지 가는 비행기를 한 번 더 타는 승객은 이보다 적은 1,378달러를 낸다니 어찌된 영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항공사가 고객이 느끼는 가치에 따라 항공요금을 각기 다르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항공사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느끼는 가치에 따라 그 가격을 책정하거나 비즈니스 운영을 달리하는 경영 기법’인 ‘수익경영’(Revenue Management)을 기본 방침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 더 높은 매출을 올리기 위한 항공사의 선택
수익경영은 단순히 비용에 마진을 더해 모든 소비자에게 같은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가격 책정을 바라본다. 즉 소비자가 느끼는 상품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같은 가격을 제시하기보다는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만큼의 가격을 맞춤형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수익경영을 ‘소비자의 가치 실현 방식’이라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용이나 원가 절감을 통한 혁신에 초점을 맞춘 경영 방식과는 달리 수익경영은 비즈니스 운영의 중심을 매출 증대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매출 증대는 단순히 투자 증대와 시장 선점을 통한 양적인 매출 증대가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의 가치를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윤을 늘리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다른 경영 방식과 구분된다.
소비자 가치 실현은 예전부터 많은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던 문제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가치를 끌어들여 매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소비자를 세분화한다는 것은 소비 형태를 세분화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 패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소비자에 관한 세부적인 데이터가 없었을 때는 같은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를 모두 같은 부류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데이터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 구매 형태도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수학 기술의 발달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형태 분석이 가능해졌다. 같은 물건을 구입해도 소비자의 필요도나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의 정도를 어느 정도 판가름하는 기술적 기반이 완성되면서 수익경영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방대한 데이터와 수학 기술이 없어도 수익경영의 개념을 도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효용성과 파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수익경영을 특징짓는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기업과 비용 중심의 가격 책정이 아닌 소비자 가치와 시장 중심의 가격 정책을 실시한다.
2. 같은 물건이라도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에 따라 소비자 분할 가격과 서비스 차별화를 실현한다.
3. 프리미엄 고객을 위한 상품 및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4. 소비자 데이터와 고객 분석을 기초로 한다.
카지노와 보험회사는 어떻게 돈을 벌까?
카지노와 보험회사가 돈을 버는 원리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리조트단지인 강원랜드의 연간 매출은 1조 원을 넘는다. 더구나 2009년 급습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꾸준한 매출과 수천 억대의 순이익을 올렸다. 매출이나 순이익을 따져 보면 이는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중견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비즈니스에서 의사결정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그런데 불확실성의 가장 대표적인 예인 카드 게임이나 주사위 던지기와 같은 도박 사업으로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가만히 곱씹어 보면 분명 불확실성도 잘 이용하면 최고의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카지노는 과학적인 비즈니스 모델
불확실성이 현실적으로 우리 생활의 여러 면을 제한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선뜻 내리기 힘든 이유는 현재의 결정이 불확실한 미래에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신에게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먼 옛날 우리 조상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다행히 이 불확실성의 또 다른 이면을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역설적으로 이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업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보험회사와 카지노다.
동전을 한 번 던졌을 경우 동전의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정확히 예측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전을 100번 던졌을 경우(정상적인 동전이라면) 대략 앞면이 50번, 뒷면이 50번 정도 나온다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1,000번, 10,000번……. 이런 식으로 동전을 더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놀랍게도 이 수는 50퍼센트에 근접한다. 이처럼 각각의 사건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사건이 계속 반복될 경우 예측 가능한 수치로 수렴하고 반복된 수가 더 많을수록 이 수치는 더 정확해지는 현상’을 확률에서는 ‘대수의 법칙’이라 부른다.
동전 던지기처럼 어떤 개인이 어느 순간 화재로 집이 불타 모든 것을 다 잃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국 화재 발생률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인구 증가율이나 주택보급률 그리고 기후 등 화재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 한 이 화재 발생률은 동전을 수없이 던져 동전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경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예측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각 개개인의 보험료와 사고시 보상금액을 산출한다. 산출 방식이 대수의 법칙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동전을 많이 던질수록 예측이 더 정확해지는 것처럼 보험의 경우도 가입자가 많을수록 좀 더 정확한 예측으로 안정된 수익 구조를 가진다. 극단적인 예로 보험 가입자가 한 명이라면 보험 회사 입장에서는 한 판 도박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가입자가 수천, 수만 명이라면 장기적으로 이는 무모한 한 판 도박이 아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안정된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사업이 된다. 매출액 기준 세계 100대 기업에 많은 보험회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수의 법칙이 얼마나 유용하게 적용되는지를 알려주는 예라 하겠다.
강원랜드와 같은 카지노 사업 또한 불확실성을 대수의 법칙을 이용해 돈벌이로 바꾼 또 하나의 대표적인 비즈니스다. 일반적으로 카지노랑 고객의 승률을 각각 51퍼센트 대 49퍼센트라고 한다. 카지노와 고객의 승률과 비교해 카지노의 승률은 불과 1퍼센트 높다는 것이다. 비록 1퍼센트의 승률이지만 놀랍게도 카지노가 단 1퍼센트의 높은 승률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결도 실은 대수의 법칙 때문이다. 한 판에서 1퍼센트의 승률로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고객을 유치해 수많은 도박판을 제공함으로써 1퍼센트의 승률을 현실화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카지노 통계 현황에 따르면 2008년 강원랜드의 하루 평균 입장객은 약 8,000명이고, 하루 평균 매출은 29억여 원이다. 만일 이 8,000명이 카지노에서 수십 번의 배팅을 통해 29억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이 한 판에 29억 원을 배팅한다고 생각해 보자. 비록 카지노가 고객보다 1퍼센트의 승률이 높다지만 이 1퍼센트가 승리를 보장해 줄 수는 없다. 이런 경우라면 카지노나 고객이나 모두 요행수를 바라고 무리하게 판을 벌이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카지노에서는 이런 고액의 도박판을 제공하지 않는다. 고액 단판 배팅이 위험한 도박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지노로서는 각 게임당 배팅 상한선을 정해 인위적으로 고객이 여러 번 배팅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고객 수천 명이 수만 번 배팅을 하는 방식을 통해 카지노는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각각의 게임을 퍼센트의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으로 탈바꿈시킨다. 즉, 이 1퍼센트를 예측 가능한 은행 예금 이자와 같은 상황으로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월드컵 때 불티나게 팔린 티셔츠
진짜보다 더 불티나게 팔린 가짜 티셔츠
2002년 월드컵 조 예선에서 우리나라가 폴란드를 이기고 사상 처음 1승을 거두자 ‘Be the Reds’라고 새겨진 티셔츠 수요가 폭발했다. 하지만 실제 월드컵 기간 동안 불티나게 팔린 티셔츠로 수익을 본 업체는 소위 ‘짜가’를 제조하는 업체와 이를 판매하는 업체였다. 오히려 정품을 생산해 대리점에서 판매하는 스포츠 브랜드업체는 그리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실제로 많은 브랜드업체들은 월드컵 이후 수요가 폭락해 팔지 못한 재고로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비록 간단한 문제 같지만 이 현상은 요즘 경영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공급사슬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SCM)의 핵심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케이스다. 공급사슬망 관리란 상품이 생산되고 유통되어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되는 전 과정을 연결시켜 운영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재 공급-제조-도매-소매-소비자’로 상품의 흐름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고, 이들의 상관관계 또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사슬망(chain)’이란 단어가 사용된다. 붉은악마 티셔츠의 사례를 통해 공급사슬망 개념의 핵심을 파악해 보자.
- 공급사슬망의 채찍 효과
앞에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공급사슬망의 ‘채찍효과(Bullwhip effect)’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인 ‘P&G’의 아기 기저귀 물류 담당 임원은 수요 변동을 분석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기 기저귀라는 상품의 특성상 소비자 수요는 늘 일정한데 소매점 및 도매점 주문 수요는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문 변동폭은 ‘최종 소비자-소매자-도매점-제조업체-원자재 공급업체’로 이어지는 공급사슬망에서 최종 소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증가하였다. 공급사슬망에서 이러한 수요 변동폭이 확대되는 현상을 공급사슬망의 ‘채찍 효과’라고 한다. 이는 채찍을 휘두를 때 손잡이 부분을 작게 흔들어도 이 파동이 끝 쪽으로 갈수록 더 커지는 현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변동폭은 유통업체나 제조업체 모두 반길 만한 사항이 아니다. 늘 수요가 일정하면 이를 기준으로 생산이나 마케팅의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여 계획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변동폭이 크면 계획이나 운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어렵다.
그럼 이런 채찍 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 번째는 수요의 왜곡이다. 소비자의 수요가 갑자기 늘면 소매점은 앞으로 수요 증가를 기대하는 심리로 기존 주문량보다 더 많은 양을 도매점에 주문하게 된다. 그럼 도매점도 같은 이유로 소매점 주문량보다 더 많은 양을 제조업체에 주문한다. 즉, 수요 예측이 공급망 위로 오를수록 점점 더 심하게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현상은 공급자가 시장에서 제한적일 때 더 크게 발생한다. 즉, 공급자가 한정된 상황에서는 더 많은 양을 주문해야 제품을 공급받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티셔츠를 공급하는 제조업체에서 물량이 한정돼 있으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주문하는 도매업체에게 우선권을 주는 건 당연하다. 결국 물건을 공급받기 위해서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더 많은 주문을 해 공급을 보장받으려 한다. 결국 ‘수요의 왜곡’이 발생한다.
채찍 효과가 일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공급사슬망에서 최종 소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대량 주문 방식을 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비자는 소매점에서 물건을 한두 개 단위로 구입하지만 소매점은 도매상에서 물건을 박스 단위로 주문한다. 그리고 다시 도매점은 공장에 트럭 단위로 주문을 한다. 이처럼 공급사슬망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기본 주문 단위가 커진다. 그런데 이렇게 주문 단위가 커질수록 재고량이 증가하게 되고, 재고량 증가는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채찍 효과의 또 다른 원인은 주문 발주에서 도착까지의 발주 실행 시간에 의한 시차 때문이다. 물건을 주문했다고 바로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다. 주문을 처리하고 물류 이동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은 각 공급사슬망 주체의 발주 실행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소매점이 도매점으로 주문을 했을 때 물건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삼사 일 정도라면, 도매업체가 생산업체에 주문을 했을 때 물건을 받기까지는 몇 주 정도가 걸릴 수도 있다. 즉 공급사슬망 위로 갈수록 이런 물류 이동 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발주 실행시간이 길어지면 주문량이 많아지고, 이는 재고량 증가로 이어진다.
월드컵 티셔츠의 경우 유명 스포츠 브랜드 소매점(대리점)들은 이들과 거래하는 도매점(브랜드 본사 물류 센터)이 있고, 이 도매상과 거래하는 제조업체(제조 공장)가 있다.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이 폴란드에게 1승을 거두자 티셔츠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요를 실감한 대리점들은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물건을 물류 본사에 주문했고 이런 경쟁 상황을 알아차린 일부 대리점들은 실제 필요한 양의 몇 배를 부풀려 주문하기도 했다. 공급 차질이 우려되면 주문한 양의 일부만 받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리점에서 주문을 받은 물류 본사도 물건 주문이 폭주하자 같은 이유로 실제 주문량 이상으로 제조업체에 주문했다.
하지만 대형 스포츠 브랜드업체의 경우 자사와 계약된 제조공장들이 먼 지방이나 해외에 위치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채찍 현상으로 소비 수요는 왜곡되고 더구나 제조 공장에서 대리점까지의 물류 이동 시간으로 인해 소비자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결과 월드컵이 끝나고 티셔츠 수요가 폭락하자 공급사슬망의 모든 개체들은 넘치는 재고 처리로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반대로 소위 ‘짜가’ 티셔츠를 판매한 영세업체들은 소매점과 도매점 그리고 제조업체의 주문과 생산이 소규모로 이뤄져 제조에서 소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이러한 단순한 공급망으로 인해 정보 교환이 용이하고 수요 정보의 왜곡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대도시 근교에 위치해 주문을 신속하게 소화하여 소매점에 배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들은 붉은색 원단이 바닥나자 흰 티셔츠를 붉게 염색하는 창조적(?) 제조 방식마저 사용해 적시에 소위 ‘짜가’ 상품을 적절한 시기에 시장에 공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신속성으로 인해 월드컵이란 한정된 기간에 많은 마진을 남기는 브랜드업체보다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영세업체들이 전체 매출 규모에서 봤을 때 더 많은 이윤을 얻었던 것이다.
우주선이 경영학 속으로
21세기 기업의 두뇌,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 기업의 전 상황을 모니터링하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지역 한국의 S전자 직영 매장에서 지금 막 신형 세탁기 한 대가 판매됐다고 가정하자.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여 구매가 완료되는 순간, 판매 정보는 실시간으로 바로 한국의 운영 본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다. 전 세계 판매망에서 판매 대수가 변할 때마다 본사 비즈니스 운영팀 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스크린의 상황 보드에는 전 세계에 흩어진 판매망의 지역별 판매 대수와 재고 현황을 알리는 지표와 그래프가 바로 업데이트된다. 이번 판매로 보드에서 미 동부지역의 해당 모델 판매량 그래프는 한 칸 올라갔고, 대신 재고 그래프는 한 칸 내려갔다.
판매 대수가 변할 때마다 수요 예측 시스템은 업데이트된 정보로 시뮬레이션과 통계 분석을 하여 미래 수요 예측을 실시한다. 수요 예측 결과가 나오자 재고 관리 시스템이 가동되어 매장 내 재고가 충분한지 여부를 자동으로 판단한다. 이번 판매 직후의 수요 예측 결과 이 매장에 방금 판매된 모델 재고가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고, 단기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 모델 10대가 더 매장에 비치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재고 분석 결과는 바로 매장에 전송되고, 이와 함께 이 매장 인근 지역에 위치한 물류 창고들에 이 모델의 재고량이 각각 얼마나 있는지가 파악된다. 검색 결과 매장에서 반경 300km 내 위치한 물류 창고들 중 뉴욕, 필라델피아, 북부 버지니아에 위치한 물류 창고 세 곳에서 이 모델 재고가 있다. 이 세 곳 중 어느 물류 창고에서 매장으로 세탁기를 배송할지는 배송업체 스케줄과 연동해 결정된다. 물류업체는 배송 직원의 스케줄을 S사 운영팀과 공유하고 있다. 수학의 경로 찾기 알고리즘과 배송 직원의 스케줄에 맞춘 최적화 알고리즘을 이용한 물류 의사결정 시스템이 가동된다. 물류 분석 결과 최대한 빨리 배송이 이뤄질 수 있는 뉴욕의 물류 창고가 선택된다. 배송 신청이 바로 배송업체에 전산으로 통보되고 배송 직원의 배송 단말기에는 새로운 물류 반송 작업이 업데이트된다.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은 미국 직영점의 소비자가 매장을 나서기 전에 완료된다.
판매 정보, 물류 창고 재고 현황은 하루에 한 번씩 중국에 위치한 위탁 제조업체의 공장에도 자동으로 전송된다. 전 세계 물류 창고와 소매점의 세탁기 모델별 보유량 자료가 모이면 본사 운영팀은 이를 분석해 수요량을 예측한 결과를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공장에서는 모델별로 다음날의 생산 계획 시스템이 자동으로 수립된다. 이 생산 계획은 현재의 생산 가동률과 재고 소진율 수치를 바탕으로 해 선형계획법으로 계산된 결과다. 그리고 물론 이 생산 계획 자료는 세탁기 부품업체에도 공유되어 부품업체들도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부품을 조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대표적인 선두 기업들의 실제 운영 방식을 바탕으로 구성해 본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가전업체인 S전자 본사, 직영 판매점, 물류업체, 중국의 위탁 제조업체 간에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산망을 통해 공유된다. 판매점의 매출 현황과 현재 재고 상황, 중국 위탁 제조업체의 공장 생산 계획, 그리고 물류업체의 물류 스케줄 정보가 가전업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판매 운영 계획 등 비즈니스 운영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S전자 운영팀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요 예측, 재고 관리, 생산 관리, 물류 관리 등의 각 부문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분석을 실시한다.
재고 관리 시스템 부문에서는 현재 재고 상황과 앞으로 예상되는 판매 현황으로 최적의 재고량을 산출한다. 생산 관리 부문에서는 현재 생산 가동률과 납기일을 바탕으로 최대한 신속히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작업 할당량을 결정한다. 그리고 물류 관리 부문에서는 트럭 대수와 배송 물건의 배송 위치 등을 고려해 최소의 비용으로 목표한 배송 시간을 달성할 수 있는 배송 계획을 수립한다. 최적 재고 산출, 생산 계획 수립 그리고 배송 경로 결정은 수학에서 다루는 최적화 문제의 다양한 응용 형태다.
실제 삼성전자는 철저한 생산 계획과 전략적 공급사슬망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제때 정확히 제공해 업계 최고의 자리에 등극했다. 지난 해 추수감사절 다음 날 미국 최대 성수기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월마트에서 근 한 달치 판매량의 LCD TV가 단 며칠 사이에 판매되었지만 상품의 품절이나 생산 차질 등의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이는 전 세계의 생산 현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인 공급사슬망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진 재고를 파악해 상품의 이동을 원활하고 신속히 처리했기 때문이다. 물류 이동과 더불어 생산 시설의 민첩성도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가전 생산 시설은 3일 단위로 정해지는 ‘3일 확정제’를 통해 급변하는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사업장에서는 ‘1일 확정제’를 추진중이다. 재고는 줄이고 필요한 양을 바로바로 신속히 공급하는 초스피드 경영에 도전하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만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전략, 생산, 운영이 과학과 어우러지는 첨단 경영이 빛을 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