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속의 타조

   
민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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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9��



■ 책 소개
호황과 불황, 이 또한지나가리라! 
미주 기자가 한국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세계와 한국 경제의 흐름! 

 


지금 세계는 대공황 이래 유례없는 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불황은1990년대 말 인터넷 버블과 그 붕괴,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다 다시 부푼 부동산 버블과 그 붕괴의 필연적 결과다. 증시와 주택 광풍이 불었을때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을 경고했으나 이는 무시됐다. 하지만 어떤 불황도 어떤 호황도 반드시 끝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에슬기롭게 대처하는 것뿐이다. 


미주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저자, 민경훈은 『모래 속의 타조』에서 미국 경제의현주소에서부터 밖에서 바라 본 한국의 모습을 총망라하였다. 지난 10년간 미주 한국일보에 실린 저자의 칼럼을 정리한 이 책에서 그는 기자의눈으로 10년간의 경제 흐름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버블의 양상, 미국 경제의 현주소와 한인 사회의 단면들 그리고 밖에서본 한국의 모습까지 다양한 사회현상을 진단하고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모래 속의 타조"는 천적에게 쫓기면 모래 속에 머리를파묻고 숨었다고 착각하는 타조를 의미한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외면하는 행동을 "타조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묻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여기서 저자는 현재가 마냥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고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은 타조처럼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지 못하는 행동을 꼬집는다. 호황의중심에서 불황을 경고하고 불황의 한복판에서 호황을 외치는 이 책은 버블,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 저자 민경훈 
미주 한국일보논설위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미주 한국일보에 입사, 사회부 기자로 출발하여 국제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 차례
1. 버블, 버블 
인터넷마니아의 함정 | 쌍둥이 형제, 라디오와 인터넷 | 코즈모와 아마존의 위기 | 인터넷 거지와 물귀신 | 집값 거품론 시비 | 추락하는 것은날개가 있나 | 목숨을 건 약속 | 창조적 융자 | 마지막 경고 | 식어 가는 부동산 열기 | 한국인의 미 부동산 투자 열풍 | 무너지는 불량모기지 | 집 빼앗기는 이민자들 | 차이나 버블 | 주택 파동이 주는 교훈 | 얼마나 떨어질까 | 오일 버블 | 버블의 끝 | 대공황의 그림자


2. 미국 경제의 현주소 
쿼티 키보드와눈덩이 효과 | 하이테크 시대의 석유파동 | 토끼와 거북이의 주식 투자 | 스크루지와 산타클로스 | 세계화와 그의 적들 | 쌀 한 톨의 경영학| 사촌이 땅을 사도 안 아픈 배 | 상도와 값진 삶 | 황금의 메시지 | 백만장자 마인드 | 지구 떠받치기 | 소매의 신 | GM과 포드의몰락 | 직원을 감동시키는 회사 | 버핏의 길 | 힘 실리는 FRB | 잘못된 경기 부양안 | 달러의 운명 

3.워싱턴 산책 
감세의 정치학 | 백설 공주와 9?11 | 산타클로스의 정치학 | 두 개의 비전 | 대법원의 힘 |추수감사절과 미국 | 보수와 신보수의 싸움 | 미국의 정신, 뉴욕의 정신 | 멕시칸 장벽의 운명 | 진정한 자유주의자 | 흑인 노예사와 오바마바람 | 세상 바꾸기 


4. 미국 사회의 단면들 
일류대와 성공| 모래 속의 타조 | 부자의 고통 | 베풂의 기쁨 | 이스터 섬과 사회 보장제도 | 혼혈의 허상 | 누가 불법 체류자인가 | 인생을 바로 사는법 | 아슬아슬한 인간의 삶 


5. 코리아타운 이야기 
월남국수와성공비결 | BOA와 한인 경제 | 호경기와 이창호의 마음 | 중간상인의 설움 | 나눠 먹는 업주가 많이 먹는다 | 고개 드는 노사 분규 |순두부 전쟁 | 어느 하버드 졸업생의 죽음 | 깨진 우정 전말기 | 소문난 잔치 | 한인 학부모의 슬픔 | 동반 자살이란 광기 | 이 또한지나가리라 


6. 밖에서 본 한국
<여인천하&&의 경제학 | 고래가 된 새우 이야기 | 미국 부자, 한국 부자 | 대원군의 후예들 | 지옥으로 가는 길 | 병에서나온 지니 | 7% 경제 성장론의 허구 | 자유 무역의 힘 | 미국인의 죽음, 한국인의 죽음 | 시리아 폭격 사건 | 노무현의 공과 과


7. 지구촌 스케치 
베를린의 두 얼굴| 벤츠가 주는 교훈 | 수의 힘 | 기업 장수의 비결 | 황금과 칼, 그리고 말씀 | 하디타의 비극 | 스웨덴 모델의 꿈과 현실 | 터지지않은 인구 폭탄 | 경영의 신 | 정의의 심판 | 유라비아의 밤 | 히틀러와 차베스 | 크리스마스 이야기 | 고통과 업적 | 중국의 비상 |해적 이야기 





모래 속의 타조 

1. 버블, 버블
오일 버블

석유값은 항상 올라가기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알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경험한 후 자원 고갈론은 세계인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고 기름뿐만 아니라 모든 원자재값은 한없이 오를 것처럼 보였다. 인구는 급증하는데 자원은 제한돼 있다는 것이 논리였다. 이와 함께 금값은 온스당 800달러를, 기름값은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섰다. 1980년대 초의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우선 금값이 온스당 300달러대로 폭락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는 기름값이 배럴당 15달러대로 추락하며 뒤를 이었다. 모든 원자재 가격이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면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옛날이야기가 되고 미국경제는 20년 이상 2~3%의 저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1차적으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고금리 정책을 들 수 있다. 돈값이 비싸지면서 돈을 빌려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 것이다. 또 고유가가 오래 계속되자 연비가 높은 자동차를 비롯한 에너지 절약형 상품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그때까지 경제성이 없던 해저 유전을 비롯 새로운 공급원이 속속 나타났다. 이런 요소들이 상승 효과를 나타내면서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자 언제까지나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몰렸던 가수요가 사라지면서 기름값은 20년 가까이 맥을 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저유가 시대가 오래 계속되자 사람들의 기름 씀씀이는 다시 헤퍼졌다. 갤런당 10마일도 채 못 가는 대형 SUV의 판매가 급신장하고 출퇴근 거리가 수십 마일 되는 곳에 집을 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됐다. 거기다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만년 극빈자 생활을 하던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과 역시 준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펴온 인도와 러시아가 시장경제체제에 들어오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생활이 넉넉해진 이들 수십억 인구가 너도나도 자동차를 사면서 기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에서 환경 보호 단체의 입김이 세지면서 석유 개발은 극도의 제한을 받게 됐다. 북극권 유역에 수십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지만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 수년 사이 오름세를 보이던 유가가 이제는 폭등세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 6일에는 하루 등락 사상 최고 폭인 배럴당 10달러가 치솟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과연 기름값이 거품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거품 부정론자들은 위에서 말한 여러 요인으로 유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유가 동향을 보면 이런 수요 공급의 원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작년 배럴당 70달러 선에서 지금 13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수요가 2배로 늘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갈 곳 없는 투기 자본의 유입 결과라고 봐야 한다. 3년 전 160억 달러에 불과했던 석유 투자 펀드 규모는 지금 2,700억 달러로 늘었다.


모든 버블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1990년대 인터넷 버블 때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이용자 수가, 2,000년대 부동산 버블 때는 계속 증가하는 이민자 수가 하이테크 주식과 집값 폭등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인용됐다. 맞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핑계로 몰려든 투기 바람이 사실은 진짜 이유였다.


기름값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까? 배럴당 150~200달러 설이 나오고 있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버블은 항상 더 부풀 수 있으며 언제 터질지를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투자 열기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폭등세가 오래 가면 갈수록 끝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미 겪은 하이테크와 주택 버블이 주는 교훈이다.
(주: 당시 배럴당 150달러 가까이 올랐던 유가는 그후 80%나 폭락했다)


2. 미국 경제의 현주소
달러의 운명

1만여 년 전 농업을 시작하면서 칼부터 조개껍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이 돈으로 사용됐지만 전세계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진짜 돈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금이다. 귀하고 아름다우며 변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황금은 ‘지상의 태양’이라는 상징성까지 겹쳐 어떤 물건보다 보편적인 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이집트 시대에 황금 1온스는 좋은 옷 한 벌을 살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 지금도 황금 1온스(현 시세로 약 900여 달러)면 좋은 양복 한 벌은 살 수 있다. 황금의 가치보존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반면 금이 아닌 정부 발행 화폐의 가치는 예외 없이 시간이 갈수록 하락한다. 아무리 큰 제국도 마찬가지다. 로마 금화와 은화의 가치는 재정 적자가 심해지면서 순도가 계속 떨어져 결국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 로마 멸망에 일조한다. 지혜는 더 쉽게 가치를 잃는다. 한때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는 세계 최초의 지폐를 발행했지만 말년에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를 남발하여 결국 휴지가 되면서 나라가 망했다. 휴지가 된 지폐 이야기는 옛날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 등으로 인한 재정 적자를 마르크화를 찍어내 해결하려다,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리어카로 마르크화를 실어 날라야 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1980년대 브라질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몇 년마다 0을 몇 자리씩 떼어 새 화폐를 만들어내는 일을 되풀이했다.


대영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19세기 영국 화폐인 ‘파운드 스털링’은 신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국가 채무가 급증하고 대공황의 충격으로 금본위제를 폐기하면서 파운드화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영국 전성기 때 1파운드면 4~5달러를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1달러에 40센트 선으로 추락했다.


과거 영국이 걷던 길을 비슷하게 밟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제2차 대전의 승리로 사실상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의 달러화는 지금까지 세계의 기축 통화 노릇을 해왔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 때 달러는 기축 통화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세계 투자가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달러를 사들이는 통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금융 위기의 본산인 미국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기는커녕 오히려 뛰어오른 것이다. 그러나 기축 통화 소유국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려운 수술을 감행하기보다는 쉽게 화폐를 찍어 이를 해결하려 하며 결국 이는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미국 재정 적자는 1조 7,000억 달러에 이르며 앞으로 추가 부양책이 나올 경우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천문학적인 빚이 늘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미국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그렇게 되면 달러도 과거 파운드와 마르크화가 밟았던 길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때 영국의 채권국이자 세계의 공장이었던 미국은 지금 중국에게 채권국과 세계의 공장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 위안화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마는 것인가.


3. 워싱턴 산책
진정한 자유주의자

미국은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의 하나다. 미국의 정치적 안정은 오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전통에 힘입은 바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양당제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조지 워싱턴이 초당적 합의에 의해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낙향한 이래 지난 200여 년간 양당제의 틀 속에서 이뤄져왔다. 내년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공화당 아니면 민주당이 이긴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한국에서처럼 대선을 몇 달 앞두고 집권당이 간판을 여러 차례 갈아가며 후보를 뽑는 일은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양당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데는 승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주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50개 주 중 메인과 네브래스카를 제외한 48개 주가 이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 때문에 상당한 지지세력이 있어도 제3당은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1992년 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출마한 로스 페로는 전체 유권자 표의 19%(1,974만 표)를 얻고도 단 한 명의 선거인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미 양당제도의 최대 피해자는 자유당이다. 1971년 12월 11일 발족한 이 정당은 20만 명의 등록 당원을 갖고 있고 다른 제3당 공직자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600명의 선거직 공직자를 배출했지만 정작 메인 게임인 연방 선거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자유당의 기본 강령은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우선 순위에 놓는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 개인의 어떤 행위도 정부는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제, 사회적으로는 민권 존중, 외교적으로는 불간섭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정부가 할 일은 치안과 국방, 판결 집행에 국한돼야 하며 동성애, 낙태, 총기 소유, 심지어는 마약과 매춘에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 작은 정부, 감세, 사회보장제도와 정부보조금 제도의 민영화도 이들이 지지하는 이슈다. 언뜻 보면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를 결합한 공화당과 경제적 개입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를 혼합한 민주당의 주장 중 자유에 관한 부분만 떼어내 만든 것 같지만,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개인 자유의 최대 보호’라는 논리의 일관성을 갖고 있으며 미국을 건국한 이들의 비전에 충실하다고 믿고 있다. 공화당 내 주요 지지세력 중 하나가 이런 성향을 갖고 있고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젊은 층 가운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부시가 대통령이 됐을 때 연방 상하원은 모두 공화당 장악 하에 있었고 작은 정부와 균형 예산, 세제 개혁과 소셜 시큐리티 민영화 등 레이건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룰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집권 7년이 다 돼가는 지금 부시가 남긴 것은 사상 최대 규모의 국채와 이라크라는 수렁뿐이다. 원칙을 저버린 공화당을 2006년 선거에서 참패했지만 그것이 민주당을 잘 해서가 아니라는 데 미국의 비극이 있다.


4. 미국 사회의 단면들
혼혈의 허상

인류의 고향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처음 눈치챈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중반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자료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과 가장 닮은 침팬지 같은 영장류가 가장 많은 곳은 아프리카이고 따라서 인류의 조상도 이곳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추론했다. 그후 100여 년 동안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탄생해 전세계로 퍼졌다는 가설은 여러 분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첫 번째가 고고학이다. 인류의 조상 화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아프리카다. 현존하는 인류의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루시’라는 이름이 붙은 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200만 년 전 지상을 거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화석을 통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모두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뻗어나간 것으로 믿고 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은 언어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인도어가 유럽어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은 19세기부터 알려져 왔다. 언어학자들은 이들 언어의 공통 조상인 원인도유럽어가 6,000년 전쯤 흑해 인근에 살던 부족에 의해 쓰여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세계 모든 언어의 조상인 노스트라틱어가 1만 2,000에서 1만 5,000년 경에 존재했을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언어를 친소 관계에 따라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아프리카 내에 존재하는 여러 언어들 간의 차이가 아프리카 밖 언어들 간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는 인류가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 퍼져 살기 시작한 기간이 안에서보다 훨씬 짧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결정적으로 입증한 것은 유전공학이다. DNA 검사를 해보면 아프리카에서 산 하나를 건넌 부족간의 DNA 차이가 중동과 아시아에 떨어져 사는 인종 간의 차이보다 크다. 뉴기니아의 토착민과 아프리카 원주민은 겉으로 보면 비슷하지만 유전자는 상당히 다르다. 뉴기니아 주민은 유전자적으로는 아프리카 흑인보다 아시아인이나 유럽인들에 가깝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는 인간과 97% 유전자를 공유하며 가장 하등 동물인 박테리아도 상당 부분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크게 보면 모든 생명은 한 형제인 셈이다. 더군다나 인간끼리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인류의 유전자는 99.99%가 같다. 그 0.01%의 차이를 놓고 서로 자기 인종이 최고라고 우기고 자기와 조금만 다르면 백안시하는 것이 최근까지의 인류 역사였다.


흑인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인스 워드가 올 프로 풋볼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두 모자가 겪었을 고생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머니 김영희 씨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16시간씩 일을 했고 워드 자신은 ‘혼혈’이라는 놀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모든 인류의 고향이 아프리카고 현 인류가 공통의 조상을 가졌으며 그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난 것이 불과 10만 년 전이라는 사실은 첨단 과학이 밝혀낸 중요한 성과의 하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인이며 혼혈이고 형제인 셈이다. 미국이라고 혼혈에 대한 차별이 없지 않았을 것이고 본인의 노력 덕도 있겠지만 그가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사회가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인스 워드 스토리가 혼혈과 피부색에 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씻어 버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5. 코리아타운 이야기
한인 학부모의 슬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영국의 학자 새뮤얼 존슨 박사의 경구다. 선의만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경구에서 제목을 따온 『선의로 포장된 길』이란 책도 있다. 재릿 테일러가 쓴 이 책의 내용은 어퍼머티브 액션에 관한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됐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사회 정책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 ‘어퍼머티브 액션’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취직이나 도급 공사, 대학 입학 시 소수계를 우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조치는 1964년 통과된 연방 민권법에 규정된 ‘평등하게 보호받을 권리’에 기초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소수계가 차별 받는 것을 넘어 객관적 조건이 떨어지는 경우에도 우선권을 준다는 데 있다.


여러 분야 가운에 어퍼머티브 액션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교육이다. 현재 미국 대학에서는 인종에 따라 입학 기준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흑인이나 라틴 아메리카인은 백인보다 성적이 훨씬 떨어져도 명문대 입학이 가능하다. 아시아인은 흑인이나 라틴 아메리카인보다 현저한 소수계임에도 이들보다 엄격한 자격 요건이 요구된다. 성적만으로 하면 아시아인의 입학 비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인종 다양화를 위해 더 좋은 자격을 구비하고 있더라도 아시아인을 탈락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들 대학 측의 설명이다.


미국 대학에 아시아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와 같이 불리한 제도 하에서도 UC버클리와 UCLA 신입생의 거의 절반을 캘리포니아 인구의 12%에 불과한 아시아인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프린스턴대 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흑인과 소수계에 대한 우대 조치가 사라지고 모든 인종을 성적에 의거하여 공평하게 심사할 경우 흑인 입학률은 현재 34%에서 12%로, 히스패닉 학생은 27%에서 13%로 급락하며 이들 자리의 80%를 아시아 학생들이 메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이같은 어퍼머티브 액션의 모순점이 논의된 지 오래됐다. 1996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폐지하는 프로포지션 209가 통과됐다. 그 이후 노골적으로 인종을 기준으로 차별하는 것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회경제적 요소’를 고려하는 사실상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남아 있다.


캠퍼스의 인종 다양화는 좋은 일이지만 억지 다양화는 인종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의 덕으로 명문대에 어렵게 진학한 소수계들은 대학 재학 기간 중 내내 ‘2등 학생’이란 열등감과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믿는 백인들의 분노에 시달려야 한다. 거기다 이들 소수계의 중도 탈락률은 백인과 아시안의 2배가 넘는다.


한인을 비롯한 많은 아시안 학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열심이다. 자녀가 실력이 모자라 못 들어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공부를 잘 하는데도 과거 백인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에 저지른 잘못을 배상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중국계는 ‘중국인 배척법’ 등으로 흑인 못지 않게 차별 당했고 일본계는 2차 대전 중 여러 인종 중 거의 유일하게 사실상 재산을 몰수당하고 강제수용소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우대는 하지 못할 망정 역차별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학 입학 시 아시안에 대한 역차별은 하루 속히 미국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6. 밖에서 본 한국
고래가 된 새우 이야기

경제적 진리를 담은 에세이 중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나는 연필입니다』라는 작품이다. 1958년 레너드 리드가 쓴 이 글은 단순하게 이를 데 없는 연필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광대한 지역에서 얼마나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우선 연필의 대를 이루고 있는 나무는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이 주 원산지다. 연필심으로 사용되는 흑연은 스리랑카의 광산에서 채굴한 것이며 지우개로 쓰이는 고무는 인도네시아의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에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경석을 섞은 것이다. 아름답게 모양을 내기 위해 칠한 래커와 레이블을 새기는 데 쓴 잉크, 고무와 연필을 연결하는 황동 등도 세계 도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물건을 제조, 운반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벌목 시설과 채굴 시설, 교통 시설이 필요하다. 이들 시설들을 갖추려면 각종 장비를 제작할 엄청난 규모의 공장이 있어야 한다. 하찮은 연필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온 세계인이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작업이 집권자의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수많은 개개인의 자발적 협력에 의해 효율적으로 이뤄지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를 가능케 한다는 게 리드의 결론이다. 


한국에서 ‘세계화’란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부터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최근에 발생한 현상은 아니다. 세계경제의 ‘세계화’ 조류를 가장 먼저, 가장 날카롭게 꿰뚫어 본 사람은 마르크스다.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가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며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 패턴을 유사하게 만든다고 썼다. 고립과 자급자족을 고집하거나 새로운 조류에 적응 못하는 국가와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국가 간의 상호의존도는 날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부터 150년 전의 일이다.


지난 100여 년간의 세계화가 ‘상품의 세계화’였다면 지난 10여 년간의 세계화는 ‘자본과 인력의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다. 공산 장벽이 무너지면서 물건뿐만이 아니라 자본과 인력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기업과 국가는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세계화 흐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 한국 축구다. 지난 48년 간 월드컵에서 한 게임도 이겨보지 못했던 한국이 당당히 세계 랭킹 5위의 포르투갈을 깨고 16강에 진출했다. 그 빛나는 업적이 히딩크의 노하우와 한국 선수들의 피땀의 합작품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세계화의 덕을 본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고래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날아가고 월드컵에 첫 출전한 새우 세네갈과 만년 웃음거리였던 미국이 8강에 안착한 것이나 일본이 16강에 오른 것 모두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세네갈 선수 대부분은 프랑스 리그에서 뛰던 사람들이며 코치도 일본과 같이 프랑스인이다.


33세의 나이에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임종 직전 누구에게 제국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가장 강한 자에게”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인간 세상에는 영원한 고래도 영원한 새우도 없다.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새우는 고래가 되고 이를 게을리하는 고래는 새우가 된다. 양질의 상품을 생산하는 최선의 방법은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은 스포츠와 경제 공통으로 적용되는 진리다. 세계화란 이 원리를 전세계로 확대 적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학연 지연의 사슬과 ‘신토불이’의 신화를 깼다는 점에서 수백 권의 경제학 서적보다 한국의 장기적인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7. 지구촌 스케치
터지지 않은 인구 폭탄

지금은 좀 수그러들었지만 한때 전세계가 ‘인구 폭탄’ 공포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생물학자 폴 얼릭은 1967년 미국 인구가 2억을  돌파하자 “미국이 인구가 늘어난다고 자랑하는 것은 암 환자가 암세포가 늘어난다고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닉슨 대통령 또한 1969년 “앞으로 또 1억 명이 늘어나면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가르치며 돌볼 것인가”하고 걱정했다.


인구 폭탄에 대한 공포는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197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이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날 경우 자원은 고갈되고 아사자가 속출하며 문명 자체가 존립하기 어렵게 된다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따지고 보면 인구 폭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19세기 초 영국의 맬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기아와 빈곤, 질병은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후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인구는 수십 배가 증가했음에도 인류 전체의 생활수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향상된 상태다. 선진국의 보통 국민들은 냉장고와 에어콘, TV와 컴퓨터,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필수품으로 여기며 과거 어느 왕과 귀족보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제3세계의 많은 이들이 문명의 혜택 없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전에는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 국민이 그런 상태였다. 기술 혁신이 인류를 그런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구가 늘어나면 자원이 고갈되고 자원이 고갈되면 재난이 닥친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처음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보장받게 된 것은 농업 기술의 개발로 대규모 영농이 가능해지면서다. 그와 함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문명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많은 인구와 잉여생산물의 존재가 노동의 분화를 가능케 했고 그것이 모든 분야에서 기술 개발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0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인구는 그후 보합세를 유지하다 18세기 이후 다시 급증하기 시작한다. 두말할 것 없이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기술 발달로 많은 사람을 먹여살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자원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석유는 재산이 아니라 골치 덩어리였다. 고약한 냄새가 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유전 근처로는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가 이를 에너지원으로 개발하여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미국 인구가 3억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또다시 해묵은 인구 폭탄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장기적인 미국의 번영을 알리는 청신호로 봐야 한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한결같이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들이다. 단지 인구가 많으냐 적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두뇌를 어떻게 개발해 인류를 풍요롭게 할 기술 혁신을 이뤄내느냐가 포인트다. 인간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임을 기억하자.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