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국가 발전이라는 목적 아래, 말레이계와 중국계 및 인도계 등 다양한 문화융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문화 융합을 경제적으로 잘 활용하여 실속을 제대로 챙기고 있다. 세계일보 기자인 저자는 이슬람권 최초의 경제선진국으로 야심차게 도약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경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본문은 먼저 자원, 외교력, 탁월한 지리적 조건 등 이슬람의 신흥 리더로서 말레이시아가갖추고 있는 기본 조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민족 국가로써의 희망과 앞으로의 한국·말레이시아 관계도 살펴보았다. 아울러 경제발전에 걸림돌이되는 경직된 정치체제, 느긋한 국민성, 열악한 사회 인프라에 관해서도 짚어보았다.
■ 저자 박종현
세계일보 기자. 주로국제부와 문화부에서 근무했으며, 1990년대부터 말레이시아와 인연을 맺어왔다. 한국외국어대학 말레이-인도네시아어 과를 졸업했고, 서울대국제대학원에서 동남아 지역을 전공했다. 2006년부터는 포스코청암재단의 지원으로 말레이시아의 말라야 대학 대학원에서 아세안을 연구하고 있다.저서로는 『지식의 힘』『내 인생을 바꾼 책』 등이 있다.
■ 차례
제1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슬람의 신흥 리더
01 풍부한 자원,축복받은 땅
02 동남아 최대의 관광대국
03 조화롭게 녹아든 다민족 문화
04 국제 무대에서 빛나는 외교력
05탁월한 지리적 조건이 경쟁력이다
06 거침없는 경제 성장의 저력
07 비전 2020, 이슬람권 최초의 선진국으로
08이슬람 금융 허브로의 도약
제2부 경제 발전의 걸림돌
01 경직된정치 체제의 느긋한 국민성
02 열악한 사회 인프라
제3부 다문화주의의 희망
01 조화로운‘다민족 모자이크’의 나라
02 다수의 약자를 위한 정책, 부미푸트라
03 한 명의 국왕과 아홉 명의 술탄
04 전·현직총리 마하티르와 바다위
제4부 이제 한국이 다가간다
01말레이시아 거울에 비친 한국
02 발전의 동반자 한국과 말레이시아
맺음말 - 말레이시아는 기회다
이슬람 경제의 새로운 메카 말레이시아
세계로 뻗어가는 이슬람의 신흥 리더
국제 무대에서 빛나는 외교력
우리나라 무역협회 회장이었던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세계 지도를 거꾸로 보자고 제안하곤 했다.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으면 한반도가 세계로 진출하는 역동적인 모습이 만들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역발상이지만 의미가 자못 큰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말에 딱 들어맞는 나라가 있다. 말레이시아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기에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마음껏 나아갈 수 있고, 보르네오 섬이 바다 가운데 있어 시야도 넓다. 역동성과 안정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는 문화의 전달자로서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다. 말레이시아는 역사상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중동의 이슬람문화를 건네받아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전하기도 했고, 영국 식민제국의 일원으로서 영연방회의의 유대감을 남태평양의 호주?뉴질랜드와 공유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러한 지리적 환경을 활용해 국제외교 무대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거듭해왔다. 냉전시대에는 비동맹회의(NAM)외교 정책을 바탕으로 온건중립 노선을 이어왔으며, 2003년 3월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등 명분 중시의 외교정책으로 국제 사회에서 입지를 굳혀왔다. 그러나 명분에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새로운 기구 창설을 제안하고 구체화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영연방회의 회원국이면서 아세한(동남아시아국가연합)창립 회원국이기도 하다. 이슬람을 국교로 가진 나라들의 연합인 이슬람회의기구(OIC)협력 틀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동북아 3국(한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아세안과 아세안+3(한?중?일)회담을 통해서는 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이익을 도모하고, 이슬람회의기구와 비동맹회의를 통해서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에 맞서며 국제사회에서 외교강국으로 활동했다. 미국중심의 인권 개념을 거부하고, 중동 문제에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영국 정부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레바논과 동티모르 등 국제분쟁 현장에 자국 군대를 파견해 국제사회의 분쟁 해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선진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구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외교 현장에서 자국의 실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자신감이 드러난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가 미국을 대상으로 한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로서도 치열한 경쟁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FTA등 국제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협상 대표단은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리푸트라(Bumiputra)정책을 문제 삼고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적극 요구하며 말레이시아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대표단은 "국내 정책에 대해 미국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 간섭일 뿐이다. 계속된다면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 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말레이시아를 압박하려는 미국의 협상전략에 정면으로 맞서며 양국 대표단의 만남을 중단하고 협상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도 했다.
물론 말레이시아가 미국 등 강대국과 대치 관계만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말레이시아는 2001년 9?11 테러 사태 이후 테러 방지를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적극 나서면서 미국과 외교 관계를 증진했다. 압둘라 바다위 총리는 1년에 한 차례씩 열리는 아세안정상회의에서 동남아 각국에 산재해 있는 분리주의자와 이슬람 극단주의자, 알카에다 세력의 척결을 주장하곤 했다.
바다위가 총리로 재임하면서 인근 국가와의 관계도 개선됐다. 그 동안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매우 불편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싱가포르는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할 당시에도 여전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1963년 영국 지배를 벗어나면서 말레이시아 연방에 귀속돼 말레이시아와 하나의 국가를 이뤘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중심이 된 싱가포르는 말레인이 다수인 말레이시아 본토와 유기적인 결합을 이뤄내지 못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리콴유는 결국 연방 탈퇴를 천명하고 1965년 싱가포르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 후에도 양국은 좀처럼 불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인접국이다 보니 크고 작은 섬에 대한 영유권 싸움이 빈번했고, 여러 가지 현안으로 마찰이 잦았다. 게다가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양국의 틈은 더욱 벌어졌다. 이처럼 오래된 갈등이 바다위 총리 취임 이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경제발전의 걸림돌
열악한 사회 인프라
말레이시아의 사회 기반 시설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하다. 교통 시설에 대한 불만은 오래됐다. 특히 육상 교통에 대해 불만이 많이 제기된다. 일단 주요 교통수단인 자동차의 판매가가 놓다. 말레이시아는 자동차 생산국이기도 하지만 국내 업체의 경쟁력이 낮아 수입되는 차량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그래서 도로에 나와 있는 차량들은 아주 고가의 신형 외제 차량이거나 오래된 말레이시아 국산차들이 대부분이다. 말레이시아는 1년 내내 기후 여건이 비슷해서 차량 손상이 적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것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차량들은 많은 매연을 배출해 보행자들을 힘겹게 한다.
쿠알라룸푸르 도심을 벗어나면 고속도로 여기저기 파인 곳이 많고 가로등 시설이 부족해 운전대를 잡는 외국인들이 불안감을 호소한다. 더구나 고속도로에서도 끼어들기 등 거친 운전이 많아 외국인 운전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와 달리 고속도로 통행이 보장된 오토바이도 원활한 운전을 위협하는 또 다른 복병이다. 도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호 위반과 끼어들기는 다반사고, 보행자들이 시시때때로 차도를 가로지른다.
보행자들의 낮은 시민의식도 교통 체증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횡단보도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으니 길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무단횡단이라고 비판할 수 없다. 열악한 교통 환경에서 살던 교민들이 2007년 3월 쿠알라룸푸르 인근 암팡 한인촌 앞에 육교가 건설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또 하나는 개발도상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택시 바가지요금이다. 특히 관광지 인근에서는 탑승 전에 미리 몇 배의 부당 요금을 부과하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를 찾는 첫날부터 택시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는 외국인이 많다. 물론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말레이계는 외국인에게 부당 요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 외에도 외국인의 눈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 호텔이나 백화점 외의 화장실은 청결과 거리가 멀어 정부가 화장실 문화 혁명을 천명하고 있을 정도다. 상수도 환경도 열악하다. 식수는 물론 세탁용 물까지도 정수기를 이용해야 할 형편이다. 정수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수돗물을 사용해서 세탁하면 몇 번 만에 하얀 내의가 누렇게 탈색되고 만다. 전기시설도 열악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발전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이 투자를 하려는 기업에게는 기회로 인식될 수 있다. 열악한 사회 기반 시설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그와 관련된 기술을 가진 기업이 만나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도로에서 교통 소음을 줄이는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소규모 업체가 쿠알라룸프르 도심에서 국제 공항까지의 구간을 맡아 사업을 진행했던 것이 한 예다.
다문화주의의 희망
조화로운 다민족 모자이크의 나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미국처럼 말레이시아도 인종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미국에는 백인이라는 확실한 주류가 있는 데 비해 말레이시아에는 주류가 없다. 미국에서는 백인들이 거의 모든 사회의 흐름을 만들어가지만, 말레이시아에는 모든 분야를 장악한 민족이 없다. 그런 점에서 말레이시아는 다민족은 무엇이고 모자이크는 또 무엇인가? 다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말레이시아 전체 국민을 구성하는 민족의 비율을 통해 이해의 고리를 만들어 보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통계 수치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인구는 크게 말레이계(말레이 반도의 말레이인과 사바와 사라와크의 원주민)60%, 중국계(중국인) 25%, 인도계(인도인) 7%, 기타 8% 정도로 이뤄졌다.
그러면 모자이크는 무엇인가? 모자이크는 하나의 그림을 구성하는 조각들이 각각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함을 뜻한다. 그렇다.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민족들이 용광로처럼 녹아들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각 민족의 고유 문화와 관습을 유지한 채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상태로 보면 된다.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말레이계와 중국계, 인도계의 문화는 확연히 구분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라는 공동체의 이상을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다민족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보아 세 민족이고, 작게 분류하면 수십개의 종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말레이시아를 찾는 사람들의 국적도 실로 다양하다. 영연방화의 국가인 탓에 영국 등 유럽 사람들이 많이 찾고, 이슬람 국가라는 이유로 아랍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최고의 관광지로 꼽힌다. 이웃 국가인 싱카포르와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에서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아세한 회원국이면서 비교적 발전된 국가라는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비슷한 맥락으로 말레이시아어는 다국어 전시장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살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동남아 사회와는 다른 모습이다. 말레이어는 국어로 규정돼 있어서 폭넓게 사용된다. 그래서 말레이사에서는 적어도 3~4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기 민족의 언어에다 말레이어는 기본이고, 영어도 거의 일상적으로 상용된다. 영어 외에 또 하나의 말레이시아 언어를 덧붙이자면 아랍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말레이시아에서는 다양한 언어로 이뤄진 방송 시스템이 존재하고 방송 프로그램의 자막도 다양하다. 같은 국적의 사람들이 상대에 따라 말레이어와 중국어, 인도어, 영어를 구사하는 현장은 분명 재미있는 모습이다. 외국인들도 이런 현장을 일상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말레이시아에 갈 기회가 생기면 대중교통인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라고. 그러면 다양한 언어가 협주곡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이 다가간다
발전의 동반자 한국과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의 한국 짝사랑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 사업과 관광 목적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주를 이루었던 1990년대의 분위기는 조금씩 사라져가고, 이제는 오랫동안 살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50세가 넘은 한국 은퇴 세대들도 찾고 있고, 영어 공부를 위해 말레이시아를 택한 학생들도 늘고 있다. 특히 국내에 조기 유학 붐이 일어나면서 어린 학생들이 말레이시아를 찾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치안 상태가 좋아 향락 산업이 별로 없는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이유가 매력을 더하고 있다.
일단 국제학교의 종류가 다양하다. 전국적으로 30개가 넘는다. 10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5만여 명의 다국적 학생들이 국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의 장점이 많이 알려진 탓인지 말레이사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도 전체 외국인 학생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인들이 영미권이나 중국 본토 사람들처럼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국제학교 교사들이 모두 서양 사람이나 중국인인 것도 아닌데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레이시아에 자녀들을 보낸 부모들은 3개 국어를 한 곳에서 배울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말레이시아의 강점으로 꼽는다.
종합대학교의 명성도 여전하다. 말라야 대학교(UM)는 영국의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에서 한때 63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국민대학교(UKM)와 푸트라 대학교(UPM), 말레이시아 과학대학교(USM)등도 해마다 500위권 이내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 수에 부족한 대학 수의 문제는 트위니 프로그램(Twinning Program)으로 해결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말레이시아가 자랑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말레이시아에서 2~3년 공부한 후 영국과 미국 등의 대학교에서 나머지 1년을 공부하면 영미권 대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한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말레이시아 관광청은 은퇴비자 설명회와 국제학교 박람회를 수시로 개최하면서 양국의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젊어서 외국생활을 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다시 고향을 찾는 게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양한 우대 조건으로 장년층을 유혹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를 제 2의 고향으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공식적인 이민 제도가 없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제 2의 고향 말레이시아 프로그램(Malaysia My Second Home Program)이라는 제도를 통해 거주를 원하는 외국인을 유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일정 기준을 만족시키면 5년 체류 비자를 주는 제도이다.
은퇴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증가하면서 말레이시아에서 부동산을 취득하는 한국인들도 늘고 있다. 재정경제부 조사에서도 동남아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은 부동산을 구입한 곳은 말레이시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말레이시아는 이제 한국인에게 가까운 이웃 국가로, 경제 발전의 동반자로 다가오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